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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학습

AI가 자기주도학습을 망친다

2024년 11월 16일 토요일 오후 3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거리 스터디카페 3층에서 목격한 한 장면이다. 중학교 3학년 김모군이 노트북 앞에 앉아 ChatGPT와 30분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그는 AI에게 "수학 문제 풀어줘"라고 묻는 대신, "내가 풀던 이차함수 문제에서 왜 판별식을 쓸 때와 안 쓸 때의 결과가 다른지 단계별로 분석해주고, 비슷한 함정이 있는 문제 3개를 만들어줘"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바로 옆자리 같은 학년 학생은 "영어 지문 해석해줘"를 반복 입력하며 답만 복사하고 있었다. 30분 후

헤아 · 6분 읽기
AI가 자기주도학습을 망친다

2024년 11월 16일 토요일 오후 3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거리 스터디카페 3층에서 목격한 한 장면이다. 중학교 3학년 김모군이 노트북 앞에 앉아 ChatGPT와 30분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그는 AI에게 "수학 문제 풀어줘"라고 묻는 대신, "내가 풀던 이차함수 문제에서 왜 판별식을 쓸 때와 안 쓸 때의 결과가 다른지 단계별로 분석해주고, 비슷한 함정이 있는 문제 3개를 만들어줘"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바로 옆자리 같은 학년 학생은 "영어 지문 해석해줘"를 반복 입력하며 답만 복사하고 있었다. 30분 후, 첫 번째 학생은 스스로 만든 5개의 변형 문제를 완성했고, 두 번째 학생은 숙제만 끝냈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성실성의 차이가 아니다. AI를 대하는 방식의 근본적 차이다. 2024년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에서 "AI 리터러시 교육 필수화"를 선언했지만(교육부, 2024.03),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AI 사용 금지" 규정이 82.4%를 차지한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4.09 전국 중고교 대상 조사, n=2,847개교). 그 사이 학생들은 스스로 AI 활용법을 터득하고 있다. 문제는 그 활용 수준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2024년 10월 발표한 '청소년 AI 활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고생 1,524명 중 68.7%가 학습 목적으로 AI를 사용하지만, 이 중 "단순 답변 요청"이 89.2%를 차지했다(KT경제경영연구소, 2024.10). 반면 "AI와 협업해 프로젝트 완성" 경험자는 고작 3.8%에 불과했다. 2019년 대입제도 개편으로 자기주도학습 전형이 폐지됐지만, 학생부종합평가에서 "학습 과정의 주도성"은 여전히 핵심 평가 요소로 남아있다(대교협, 2024.11 대학별 전형계획 분석). 그런데 이 "주도성"의 정의가 AI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되지 못하고 있다.

진짜 위기는 AI 사용 자체가 아니라 활용 격차의 고착화다. 세종대 학정포럼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AI는 이미 "정답을 찾아주는 수동적 도구"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능동적 주체"로 진화했다(뉴시스, 2024.11.15 보도). 의료 분야에서는 AI가 간암 예측에 30% 성공률을 보이며, 전문가들이 "정답이 없는 불확실한 문제 해결"의 파트너로 AI를 활용하고 있다(뉴시스, 2024.11.14).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AI를 "답안지 자판기" 수준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강남 맘카페에 올라온 자료를 종합하면, 2024년 대치동 주요 학원 10곳 중 7곳이 "AI 활용 금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의 사고력 저하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상위 1% 학생들은 학원 몰래 AI를 "개인 연구소"처럼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AI에게 문제의 답을 묻는 대신, 문제의 패턴을 분석하게 하고, 유사 문제를 생성하게 하며, 자신의 풀이 과정을 검증받는다. 결과적으로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사이의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도구 활용 능력의 차이를 넘어선다. 학습의 본질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기주도학습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이었다면, AI 시대의 자기주도학습은 "AI를 자신의 의도대로 지휘해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다. 암기와 반복 연산 중심의 학습에서는 AI가 위협이었지만,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중심 학습에서는 AI가 가장 강력한 협업 파트너가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교육 현장이 여전히 전자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AI 없이 홀로 공부하는 금욕적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AI와 함께 더 높은 차원의 문제를 해결해내는 지휘 능력이다. AI에게 "답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관점에서 분석해보라", "이런 조건으로 가설을 세워보라", "이런 방향으로 확장해보라"고 지시하는 능력 말이다. AI가 승객을 태우고 가는 택시가 아니라, 조종사가 목적지를 정하고 항로를 개척하는 항공기가 되도록 하는 능력이다.

2024년 11월 16일, 스터디카페에서 목격한 그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AI를 사용했지만 두 학생이 얻은 것은 전혀 달랐다. 한 학생은 AI에게 끌려다녔고, 다른 학생은 AI를 끌고 갔다. 전자는 숙제를 마쳤고, 후자는 사고 근육을 키웠다. AI 시대의 자기주도학습은 바로 이 차이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만드는 "AI 지휘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직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AI를 금지할 것인가, 아니면 AI를 제대로 부려먹는 법을 가르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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