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국제학교는 왜 제외됐나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청담동의 한 브런치 카페. 테이블 위에는 2만 8천 원짜리 에그 베네딕트가 식어가고 있었다. 마흔두 살의 박선영 씨는 음식이 아니라 아이폰 16 프로 화면에 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유령 좌석에 앉을 수 없는 아이들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청담동의 한 브런치 카페. 테이블 위에는 2만 8천 원짜리 에그 베네딕트가 식어가고 있었다. 마흔두 살의 박선영 씨는 음식이 아니라 아이폰 16 프로 화면에 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에 집중했다. '[긴급] 2025 의대 증원, 국제학교생은 이제 완벽히 끝난 건가요?' 댓글 137개가 아우성이었다.
1년에 4,000만 원이 넘는 학비를 쓰며 아이를 제주 국제학교에 보낸 지 7년. 국제학교는 영어로 수업하며 글로벌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학교로,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국제 경쟁력과 동시에 국내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선택한다. 박 씨의 목표는 단 하나, 한국 의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길이 막혔다고 한다. 박 씨의 손가락은 불안하게 화면을 위아래로 쓸어내렸다.
공황의 원인은 숫자였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은 약 1,500명가량 늘었다. 하지만 이 숫자는 국제학교와 해외고 학부모들에게는 환호가 아니라 절망의 근거가 됐다. 그들은 이 새로운 기회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다고 느낀다. 정말 그들의 길은 사라졌는가. 데이터는 통념과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안의 실체는 기회의 소멸이 아니다. 경쟁의 규칙이 근본적으로 재설계되었다는 데 있다.
먼저 숫자를 해부해야 한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분의 약 80% 이상이 비수도권 대학에 배정되었다. 이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더 중요한 규칙은 그 배정된 좌석을 채우는 방식에 있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제15조는 비수도권 의대가 신입생의 상당수를 해당 지역 고교 졸업자로 채우도록 강제한다.
이 법의 연장선에서, 2025학년도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은 크게 증가했다. 입시업계 분석에 따르면 전년 대비 8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비수도권 전체 모집 정원의 상당 부분이 '지역 자격'을 가진 학생에게 할당되는 구조다.
이것은 시장이다. 돈이 들어왔고, 사람이 따라왔고, 규칙이 휘어졌다. 국제학교 학생들은 이 새로운 규칙의 밖에 서 있다. 그들은 '해당 지역' 고교 졸업생이 아니다. 법적으로 자격이 없다. 따라서 증원된 좌석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유령 좌석(ghost seats)이다. 눈에는 보이지만 앉을 수 없는 자리. 이것이 박선영 씨가 느끼는 박탈감의 구조적 실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학부모들은 증원으로 인해 자신들이 갈 수 있었던 기존의 파이마저 줄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입시업계 분석에 따르면, 국제학교, 해외고 졸업생이 주로 지원하는 수시 일반전형과 정시 일반전형의 총 모집인원은 전년과 비슷하거나 소폭 증가했다. 길은 좁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약간 넓어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파이의 절대 크기가 아니라 전체 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전체 의대 정원이 크게 팽창하는 동안, 국제학교 졸업생이 접근 가능한 좌석의 비율은 급락했다. 거대한 신규 고속도로(지역인재전형)가 뚫리면서, 기존에 이용하던 국도(일반전형)는 갑자기 전체 교통망의 변두리로 밀려난 셈이다.
이 국도로 이제 더 많은 차들이 몰려든다. 경쟁은 소멸한 것이 아니다. 극소수의 통로로 압축되어 더 폭력적인 형태로 심화됐다. 과거에는 학업적 탁월함(excellence)이 경쟁의 본질이었다면, 이제는 자격(eligibility)이 첫 번째 필터가 되었다. 제도는 비싼 농담이 됐다.
사교육 컨설턴트로 12년을 보낸 내 경험에 따르면,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교육 정책의 변화는 항상 누군가를 승자와 패자로 만든다. 2008년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그랬다. 2019년 정시 40% 확대가 그랬다. 이번 의대 증원은 '지역성'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게임의 중심으로 끌어왔다.
이것은 특정 집단을 벌주기 위한 설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고려조차 하지 않은 설계의 결과물이다. 미국의 교육 사회학자 게리 베커(Gary Becker)가 지적했듯, 모든 교육 선택은 합리적 투자 계산의 결과다. 국제학교 학부모들은 자녀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연간 수천만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그 투자는 한국 의대 입시라는 특수한 시장의 새로운 규제 장벽 앞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청담동 카페에 앉아 있던 박선영 씨는 결국 차가워진 에그 베네딕트에 포크를 대지 못했다. 그녀가 마주한 벽은 음모가 아니라 제도였다. 그녀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학업적으로 뒤처져서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아이의 졸업장을 '자격 미달'로 분류하기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녀의 불안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불안의 화살이 겨눌 대상이 없었다. 거대한 톱니바퀴가 방향을 틀 때, 그 사이에 낀 개인의 선택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의대 증원이라는 국가적 잔치에서, 그녀와 그녀의 아이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