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헤아헤아
트렌드

수능 과학, 이제 일반고가 이긴다

한밤중, 아이의 책상 위에는 우주만큼 낯선 기호들로 가득한 과학탐구 II 문제집이 산처럼 쌓여있다. 국내 최고라는 학원의 킬러 문항 모의고사를 붙들고, 1분 1초를 다투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부모는 대견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 모든…

헤아 · 6분 읽기
수능 과학, 이제 일반고가 이긴다

2026학년도 입시, ‘과학고처럼’ 공부하면 실패하는 역설

한밤중, 아이의 책상 위에는 우주만큼 낯선 기호들로 가득한 과학탐구 II 문제집이 산처럼 쌓여있다. 국내 최고라는 학원의 킬러 문항 모의고사를 붙들고, 1분 1초를 다투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부모는 대견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 모든 노력이 단 한 문제의 실수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의대와 최상위권 자연계열이라는 목표가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는 감각.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 최상위권 입시를 준비하는 가정의 보편적인 풍경이다.

‘이과 최상위권은 당연히 과탐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믿음은 견고했다. 그것은 일종의 명예훈장이자, 상위 1%의 자격을 입증하는 통과 의례였다. 영재고와 과학고 학생들이 즐비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반고 최상위권 학생들은 그들과 똑같은 무기, 혹은 더 무거운 무기를 들고 전쟁에 참여해야만 했다. 이 치열한 노력과 막대한 사교육비는 합격을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세금’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26학년도 입시를 목전에 둔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이 믿음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든다.

변화의 진앙은 대학 스스로에게서 시작되었다. 연세대와 성균관대를 필두로 한 주요 대학들이 2025학년도부터 자연계열 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과학탐구 필수’라는 빗장을 풀었다. 표면적으로는 문, 이과 통합 교육의 취지를 살리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입시 판도를 뒤바꿀 거대한 지각 변동이 숨어있다. 과거에는 견고한 성벽처럼 보였던 과탐의 아성이, 이제는 영리한 소수만이 눈치챈 ‘우회로’를 열어준 셈이다.

이 변화가 왜 치명적인가? 과탐 응시자 수가 급감하면서, 이 영역은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들만이 남아 서로의 점수를 빼앗는 ‘고인 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이 너무 맑고 투명해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거대한 파문이 이는 것처럼, 과탐 만점을 목표로 하는 초고수들 사이에서 단 한 문제의 실수는 백분위의 폭락으로, 즉 입시의 실패로 직결된다. 가장 뛰어난 과학 영재들이 모여 피 터지게 싸우는 이 리그는, 이제 가장 위험한 ‘함정’이 되었다. 모두가 의무적으로 치러야 한다고 믿었던 이 무거운 ‘과학세(科學稅)’는, 사실 합격의 핵심 변수인 국어와 수학 성적을 조용히 갉아먹는 ‘그림자 세금(Shadow Tax)’에 불과했던 것이다.

데이터는 이 역설을 더욱 명확히 증명한다. 메가스터디와 시대인재 등 입시 최전선의 분석에 따르면, 과감히 과탐을 버리고 비교적 학습 부담이 적은 사회탐구로 선회한 ‘사탐런’ 학생들이 국어와 수학에서 확보한 표준점수 우위를 통해 합격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비겁한 우회가 아니라, 바뀐 게임의 룰을 가장 정확하게 간파한 자들의 냉철한 전략이다. 대학이 ‘과탐 필수’라는 족쇄를 풀어준 순간, 일반고 최상위권에게는 합법적인 ‘치트키’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은 이러한 흐름에 쐐기를 박는다. 모든 학생이 통합과학을 공통으로 응시하게 되면서, 특정 과목의 심화 지식을 측정하던 과탐의 변별력은 사실상 소멸 수순에 들어섰다. 과학 영재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은 이제 낡은 패러다임이 되었다. 진정한 승부처는 그들이 만들고 그들끼리 경쟁하는 레드오션이 아니라,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들어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새로운 전략 지대다.

따라서 지금 학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라는 익숙한 주문이 아니라, ‘전략적 포기’라는 낯선 용기다. 내 아이가 과학 천재들과의 무모한 정면승부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을 패배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변화한 입시 지형도 위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현명한 지휘관의 결단이다. 2026년의 입시는 ‘잘하는 자’가 아니라 ‘영리하게 피하는 자’가 승리하는 게임으로 재편되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과탐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국어와 수학이라는 날카로운 창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때, 비로소 합격의 문은 열릴 것이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나요?

읽고도 결정이 안 서는 지점이 있나요?

공식 근거와 운영 답변, 보호자 경험을 구분해 확인할 수 있도록 질문을 남겨보세요.

비교과 결정 질문하기 →

댓글 (0)

댓글 불러오는 중...

WRITE A COMMENT

더 많은 인사이트 받아보기

매주 엄선된 핵심 정보를 무료로 보내드려요.

무료 구독하기

아침 브리핑, 이메일 열어보기 전에 알림으로 먼저 받아보시겠어요?

프로젝트 컨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