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 아닌 프로젝트를 증명하라
2024년 10월의 마지막 화요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컨설팅 오피스. 통유리 너머 테헤란로의 가을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걸려 있다. 내 앞에는 한 어머니가 앉아 있다. 아들은 국내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국제학교 11학년.…


전공이라는 화석

2024년 10월의 마지막 화요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컨설팅 오피스. 통유리 너머 테헤란로의 가을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걸려 있다. 내 앞에는 한 어머니가 앉아 있다. 아들은 국내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국제학교 11학년. 그녀가 방금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아이패드 화면에는 지난 3년간 아들이 받은 거의 모든 과목의 ‘A’가 빼곡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정했지만, 손끝은 쉴 새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투명한 잔을 더듬고 있었다.
“그래서, 연세대 UIC(언더우드국제대학) 경제나, 고려대 국제학부(DIS) 쪽으로 먼저 안정권을 확보하고… 미국 쪽은 아무래도 컴퓨터공학(CS)이겠죠? 버클리나 카네기멜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UCLA나 USC 정도는 써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나는 대답 대신 서류를 뒤적였다. 완벽한 내신(GPA), 1580점의 SAT 점수, 학생회 임원 경력, 오케스트라 활동. 지난 10년간 내가 이런 종류의 학생 서류를 수천 장은 넘게 보았다. 빈틈없이 채워진 성공의 증거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더는 ‘보증수표’가 아닐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 그녀는 아들의 전공이라는 ‘간판’을 따기 위해 연간 5천만 원이 넘는 학비와 별도의 컨설팅 비용을 쓰고 있었다. 그 간판이 낡고 부서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어머니들의 불안은 개인의 기질 탓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교육 시스템이 설계한 합리적 반응이다. ‘좋은 대학 좋은 과’라는 명패는 단순한 졸업장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 소득을 보장하는 일종의 자산 증서였다. 사람들은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 학과에 ‘투자’했다. 2000년대 초반,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직전 법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2010년대에는 경영학과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2020년대에 들어서는 모두가 의대와 컴퓨터공학을 외친다. 돈이 몰렸고, 사람이 따랐고, 입시 규칙이 그 흐름에 맞춰 휘어졌다. 그것은 시장이다.
그런데 그 시장의 근본 규칙이 바뀌고 있다. 상품을 공급하는 생산자, 즉 대학 스스로가 ‘전공’이라는 낡은 상품 라벨을 떼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이미 그 전환을 명료하게 기록했다. 2025년 발간된 연속 보고서(RR2025-34, RR2025-35)의 결론은 단호하다. 대학은 더 이상 공급자(교수) 중심의 교육을 지속할 수 없으며, 수요자(기업, 사회)의 요구에 맞춘 데이터 기반 교육 혁신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전공 종말’ 선언에 가깝다.
이것이 만들어내는 역설은 지독하다. 학부모는 특정 학과의 간판을 보고 자녀를 입학시키지만, 정작 대학은 생존을 위해 그 간판을 지우고 있다. 숙명여대가 고대구로병원과 손잡고 희귀 난치병 치료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보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학생의 전공은 생명과학일 수도, 컴퓨터공학일 수도, 심지어 디자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슨 과’ 학생이냐가 아니라, 이 복잡한 문제 해결 과정에 ‘어떻게 기여했는가’이다. 학생이 선망하던 학과에 입학하는 순간, 그가 목표로 삼았던 ‘전공’이라는 고정된 섬은 이미 녹아내려 ‘프로젝트’라는 역동적인 군도(群島)로 변하고 있었다. 제도는 비싼 농담이 됐다.
성공의 증명서가 바뀌었다. 과거의 증명서는 성적 증명서(Transcript)였다. 어떤 과목을 ‘수강’했는지를 기록한 소비의 증거다. 그러나 새로운 증명서는 프로젝트 포트폴리오(Project Portfolio)다.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증명하는 생산의 기록이다. 교수신문 같은 대학 사회 내부의 매체들조차 이제 ‘상아탑’이라는 단어 대신 ‘세상과의 연결’을 대학의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전공 지식의 깊이보다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의 폭이 압도적으로 중요해졌다. 이 변화는 미미하지 않다. 이것은 혁명이다.
전공은 이제 ‘여권(Passport)’과 같다. 당신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즉 어느 학문적 배경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특정 국가에 입국해 합법적으로 활동할 권리를 증명하는 것은 ‘비자(Visa)’다. 프로젝트 경험이 바로 그 비자다. 특정 산업, 특정 문제에 대한 당신의 실질적 역량을 증명한다. 강력한 국가의 여권은 분명 편리하지만, 비자 없이는 그저 관광객에 머물 뿐이다. 아무도 관광객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
나는 다시 대치동 컨설팅 오피스의 그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녀의 얼굴에 새겨져 있던, 아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잘못된 길로 들어설지 모른다는 공포. 하지만 그녀가 하려는 선택 자체가 이미 과거의 지도 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무슨 과를 갈 것인가’는 더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그 질문은 아이를 특정 틀에 가두고, 그 틀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속수무책으로 만들 뿐이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내 아이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아이의 시선을 대학 간판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로 향하게 한다. 성적표의 숫자 대신, 자신의 경험 포트폴리오를 채우게 한다. 그것은 시험 점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한 명의 독립적인 인간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미래의 인재 증명은 ‘어느 대학 무슨 과’라는 간판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봤는가’라는 자신만의 서사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 모든 말을 해주지 못했다. 그녀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수백만 원을 썼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더 큰 불안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서류 위에서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2030년, 그녀의 아들이 손에 쥐게 될 최고의 자산은 특정 대학의 졸업장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대학이라는 첫 투자자를 발판 삼아 스스로 쌓아 올린, 문제 해결의 역사 그 자체일 것이다. 전공은 이미 화석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화석을 캐기 위해 미래를 파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