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문제에 베팅하라
한 학부모가 자녀의 입시 포트폴리오를 점검한다. 마치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가 투자 종목을 고르듯, 그는 자녀가 갈 수 있는 최고의 대학, 최고의 학과라는 ‘우량주’에 모든 자원을 집중 투자한다. 이들에게 대학은 지난한 경쟁의 끝에 쟁취해야…


성벽을 쌓는 부모, 성벽을 허무는 대학

한 학부모가 자녀의 입시 포트폴리오를 점검한다. 마치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가 투자 종목을 고르듯, 그는 자녀가 갈 수 있는 최고의 대학, 최고의 학과라는 ‘우량주’에 모든 자원을 집중 투자한다. 이들에게 대학은 지난한 경쟁의 끝에 쟁취해야 할 전리품이자, 한번 얻으면 평생 가는 견고한 성벽의 ‘간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녀를 그토록 성벽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지금, 정작 혁신의 진원지가 된 대학들은 스스로 성벽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대학의 가치는 더 이상 ‘역사적 평판’이라는 닫힌 시스템 안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KEDI의 최근 보고서(RR2025-34)는 대학 평가의 패러다임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학생, 기업, 사회라는 ‘수요자’들은 이제 대학의 이름값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취업률, 역량 성취도 같은 구체적인 ‘성과 데이터’를 요구하며, 대학이 현실 세계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는지를 기준으로 그 가치를 매긴다. ‘상아탑’의 시대는 공식적으로 저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는 대학이 ‘문제 해결의 허브(Hub)’로 진화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숙명여대가 고대구로병원과 손잡고 난치병 공동 연구에 나서는 것처럼(뉴시스), 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대학들은 병원, 기업, 연구소와 적극적으로 연결되며 사회의 가장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교수신문이 창간 34주년 사설을 통해 ‘대학과 사회를 잇는 것’을 학계의 새로운 사명으로 천명했듯, 이제 대학의 핵심 역량은 지식을 독점하는 능력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성’에서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지독한 역설과 마주한다. 학부모는 자녀를 어떻게든 더 안전하고 배타적인 ‘그들만의 리그’로 보내려 하지만, 정작 가치를 인정받는 대학들은 ‘우리만의 성’을 허물고 산업 및 사회 현장과 가장 치열하게 연결되려 분투한다. 이는 마치 자녀의 미래를 위해 ‘교육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 하나의 명문대 학과라는 우량주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시대는 끝났다. AI가 인간의 지식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의 변동성 속에서 진정으로 살아남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문제 해결 프로젝트’, ‘핵심 역량’, ‘사회적 네트워크’ 등으로 다각화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다.
이제 우리는 대학을 최종 목적지가 아닌 ‘도킹 스테이션(Docking Station)’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미지의 문제들을 탐험하는 긴 항해에 앞서, 잠시 정박하여 최신 기술(역량)을 탑재하고 새로운 항해 지도(네트워크)를 얻는 우주 정거장. 이 정거장의 가치는 벽의 높이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우주선과 연결될 수 있는지, 즉 ‘연결성’으로 결정된다. ‘어느 대학이 최고인가?’라는 낡은 질문을 멈추고, ‘어떤 문제가 가장 풀 가치가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때다. 미래의 졸업장은 더 이상 대학의 ‘브랜드’가 아니라, 당신이 몸담았던 ‘문제 해결 허브’의 이름으로 증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의 미래는 객관식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던지는, 용감하고도 ‘전략적인 베팅의 포트폴리오’ 그 자체다.